브뤼셀 유럽의회 앞에 걸린 회원국 국기들
자동차 · ISSUE REPORT

관세 82%의 경고
— EU 완성차업계가 '2029년 유예'를 요구했다

배터리 원산지 규정 하나에 걸린 14억 7천만 유로와 한국 배터리 3사의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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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과 영국을 오가는 전기차 수출길에 관세 폭탄이 예고됐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는 9월 16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에게 서한을 보내, 2027년부터 강화되는 배터리 원산지 규정을 2029년 말까지 유예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규정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2027년 한 해 예상 수출 물량의 82%가 관세 대상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근거다.

2029년ACEA가 EU·영국에 요청한 배터리 원산지 규정 유예 시한
€2,100배터리 셀 역내생산 의무화 시 전기차 1대당 추가 비용(브뤼헐연구소)
65%한국 3사가 차지하는 유럽 내 가동 중인 배터리 셀 생산능력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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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관세, 82%가 못 피한다

현재 EU와 영국 사이의 무역협력협정(TCA)에 따른 배터리 원산지 규정 전환기간은 올해 12월 31일 종료된다. 예정대로라면 2027년부터는 배터리팩에 들어가는 셀과 모듈까지 EU 또는 영국산이어야 '역내생산'으로 인정받아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ACEA는 이 기준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2027년 예상 EU→영국 전기차 수출 물량 약 52만 대(금액 기준 179억 유로) 가운데 약 42만 6,000대, 즉 82%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것으로 추산했다. 10%의 관세가 그대로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2027년 한 해에만 약 14억 7,000만 유로의 관세 부담이 발생한다는 계산이다.

ACEA를 이끄는 올라 캘레니우스 회장(메르세데스-벤츠 CEO)과 지그리드 더프리스 사무총장은 서한에서 현행 규정을 2029년 말까지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제3국에서 만든 셀이나 모듈이 들어간 배터리팩이라도, 팩 조립 자체를 EU나 영국에서 하면 '역내생산'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대신 ACEA는 2030년부터 EU·영국 내 배터리 셀 생산을 의무화하고, 2032년부터는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 양극재 원료까지 역내 조달을 의무화하는 3단계 로드맵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2023년에도 한 차례 미뤄진 규정

사실 이 배터리 원산지 규정은 처음이 아니다. 2023년에도 EU와 영국은 완성차 업계의 준비 부담을 고려해 같은 규정을 한 차례 유예한 바 있다. ACEA의 이번 요청은 사실상 두 번째 연장 요구인 셈이다.

파리 시내의 전기차 충전소
파리의 전기차 충전소 · Dietmar Rabich, Wikimedia Commons(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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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산 배터리'의 청구서는 소비자 몫

규정을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 또 다른 보고서도 나왔다. 브뤼셀의 경제연구기관 브뤼헐(Bruegel)이 9월 22일 공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배터리 셀의 EU 역내생산을 의무화할 경우 일반적인 전기차 한 대당 가격이 약 2,100유로 오를 수 있다. 여기에 저탄소 철강 사용 의무까지 더해지면 대당 200유로가 추가된다. 반면 인증 절차 간소화로 아낄 수 있는 비용은 대당 61유로에 그쳐, 규제 완화 효과를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같은 배터리 셀이라도 EU에서 생산하면 킬로와트시(kWh)당 85유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조달하면 50유로 수준이라는 것이 브뤼헐의 계산이다. 보고서는 2019년 대비 EU 자동차 생산량이 260만 대(19%) 줄었고, 연간 신차 판매도 220만 대가량 감소했다는 점을 함께 짚으며, 1,400만 명이 종사하는 자동차 산업 전체의 체력이 이미 약해진 상태에서 성급한 역내생산 의무화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을 막는 것이 아니라 유럽이 따라잡을 시간을 버는 것 — 브뤼헐 보고서가 강조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완급 조절이었다.

같은 보고서는 2024년 10월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35.3%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이 조치가 순수 전기차에만 적용되고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는 비켜가면서 하이브리드 수입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점도 지적했다. 규정을 정교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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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터리 3사, 다시 켜지는 계산기

이번 논의의 결과는 한국 배터리 업계와도 직결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폴란드, 헝가리 등지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두고 있으며, 현재 유럽에서 가동 중인 배터리 셀 생산능력의 65%를 한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다만 신규 증설 중인 설비를 기준으로 보면 중국 기업의 비중이 55%에 달해, 앞으로의 점유율 구도는 이미 조금씩 바뀌고 있는 흐름이다.

ACEA의 유예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한국 3사는 기존처럼 역외에서 생산한 셀을 유럽 공장에서 팩으로 조립하는 방식을 당분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유예 없이 2027년부터 규정이 그대로 시행되면, 완성차 업체들은 원산지 기준을 맞추기 위해 한국 기업들에 유럽 현지 셀 생산 비중을 더 높여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든 2030년 셀 생산 의무화, 2032년 양극재 원료 의무화라는 다음 단계가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한국 배터리 업계의 유럽 투자 계획은 이번 결정과 맞물려 다시 조정될 수밖에 없다.

유예안이 받아들여지면

2029년 말까지 기존 방식 유지. 제3국산 셀이라도 EU·영국에서 팩 조립만 하면 역내생산으로 인정돼, 완성차·배터리 업계 모두 전환 준비 기간을 번다.

유예안이 불발되면

2027년부터 즉시 강화된 기준 적용. 예상 수출 물량의 82%(약 42만 6,000대)가 관세 대상이 되고, 2027년 한 해 관세 부담이 최대 14억 7,000만 유로에 이를 수 있다.

숫자는 이미 브뤼셀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다. 남은 것은 올해 12월 31일 전환기간 종료 전까지, EU와 영국이 어떤 답을 내놓느냐다.

#자동차#전기차#배터리규정#EU#한국배터리

자료 출처: ACEA 공식 발표, electrive.com, Euronews(브뤼헐연구소 보고서 인용), 글로벌이코노믹 등 공개 보도 종합. 사진: Wikimedia Commons(CC BY 3.0 /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