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가 발탁한 남아공 첫 비백인 여성 판사, 국제형사재판의 역사를 쓰다
지난 10월 9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법률가 나비 필라이(85)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넬슨 만델라가 발탁한 남아공 최초의 비백인 여성 고등법원 판사,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소장,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 유엔 인권최고대표(2008~2014)를 거친 인물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도 후보로 거론됐지만 수상하지 못했고, 이를 둘러싼 반응이 시상 발표 직후부터 엇갈렸다.
필라이의 이력은 남아공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체제와의 싸움에서 시작됐다. 그는 정치범들의 변호를 맡아 활동했고, 그 안에는 넬슨 만델라도 있었다. 이후 만델라 정부에서 남아공 최초의 비백인 여성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국제무대에서는 르완다 집단학살을 다룬 국제형사재판소(ICTR)의 판사와 소장을 지냈고,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로도 일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는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맡아 인권 외교의 최전선에 섰다.
최근에는 유엔 독립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팔레스타인 점령지 문제를 조사해왔고, 미얀마를 상대로 한 로힝야족 집단학살 혐의 소송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임시 재판관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가 이끈 조사위원회는 네타냐후 정부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에 '집단학살 의도'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 예르겐 바트네 프뤼드네스는 필라이가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 집단학살이 처벌받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국제법의 적용 범위와 영향력을 크게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제법 체제가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고, 그 기관들이 공격받고 있다"면서, 이번 선정이 "국제 체제와 규범 기반 질서, 관련 기구들을 공격하고 훼손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국제법 체제가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고, 그 기관들이 공격받고 있다.
필라이 본인은 소식을 접한 직후 "변호사이자 판사로서, 이게 사실인지부터 확인하고 싶다"며 농담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위원장을 맡았던 가자지구 조사 보고서를 언급하며 "진실을 말하는 데 왜 용기가 필요한가. 그저 법을 해석하고 사실관계를 조사해 공정하게 판단하면 될 일"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선정을 두고 노벨위원회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망신시켰다"며 필라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을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8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며 여덟 번은 상을 받았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노벨위원회가 "도덕적 나침반을 잃었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반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아녜스 칼라마르가 공개한 영상에서 필라이는 트럼프를 겨냥한 듯 "여러분이 박수를 조금만 더 쳐주면, 이 상을 트럼프와 나눌 수도 있겠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독일 뉘른베르크 포럼 행사에 참석 중이었다며 "인권을 지지하는 동료, 친구들과 함께 이 소식을 받은 것이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고 전했다.
아파르트헤이트 법정의 변호인에서 국제형사재판의 산증인으로, 그리고 다시 논쟁의 한가운데로 — 나비 필라이의 2026년은 노벨위원회가 말한 "공격받는 국제법 체제"의 축소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