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쥐고, 본다
— KAIST·칼텍·NTU가 함께 만든 ‘딱정벌레 로봇’
손가락을 까딱이면 로봇이 걷고 집는다, 인공근육과 촉각센서로 구현한 양방향 피드백
13일 KAIST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 싱가포르 난양공대(NTU)와 공동으로 딱정벌레의 다리와 턱 구조를 본뜬 소프트로봇 ‘비틀봇(BeetleBot)’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신소재공학과 김상욱 교수팀이 주도한 이번 연구는 지난 8월 1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걷기·잡기·보기·촉각 인식 기능을 한 로봇에 모두 결합했다는 점이, 기능별로 로봇을 따로 만들던 기존 소프트로봇 연구와 가장 다른 지점이다.
손가락을 까딱이면, 로봇이 움직인다
비틀봇을 조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연구팀이 개발한 신축성 손가락 센서 패치를 끼면, 패치에 내장된 탄소나노튜브가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정도를 감지해 전진·좌회전·우회전·잡기 네 가지 명령으로 바꾼다. 이 신호는 블루투스로 로봇에 전달된다. 로봇에 달린 소형 카메라는 주변 영상을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보내줘, 조종자가 로봇의 ‘눈’으로 주변을 보며 움직일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구조를 ‘양방향 피드백’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이 손가락으로 명령을 내리면 로봇이 움직이고, 로봇이 본 화면이 다시 사람에게 돌아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인공근육으로 걷고, 턱으로 잡는다
비틀봇의 다리는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액정 엘라스토머(LCE) 인공근육으로 움직인다. 전기로 작동하는 발열 장치가 이 근육을 가열하면 수축하면서 걷는 동작이 만들어진다. 딱정벌레의 턱을 본뜬 그리퍼 역시 별도의 인공근육과 압력 센서를 갖춰, 물체를 집을 때 가해지는 힘을 스스로 감지한다.
왜 ‘딱정벌레’인가
연구팀은 걷기, 잡기, 시각·촉각 인식, 사용자 조종이라는 네 가지 기능을 하나의 몸체에 담기 위한 모델로 딱정벌레의 다리-턱 구조를 선택했다고 설명한다. 보통의 소프트로봇은 이런 기능을 각각 다른 로봇이나 장치로 나눠 구현해 왔다.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이 로봇의 다리와 턱을 동시에 깨운다 — 사람과 기계 사이의 신호가 한 번에 양방향으로 오간다는 점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다만 연구팀은 한계도 함께 밝혔다. 구동 속도와 에너지 효율, 내구성, 전력 공급, 통신 안정성 등은 앞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저온에서도 빠르게 작동하는 인공근육을 개발하고, 시각·촉각 데이터를 로봇의 움직임 제어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다음 연구 과제로 제시됐다.
좁은 틈새를 누빌 로봇
연구팀은 비틀봇의 활용처로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산업 현장의 틈새에서 원격으로 작업하거나, 작은 부품이나 시료를 회수하는 작업을 꼽았다. 걷기와 잡기, 시각·촉각 인식을 한 몸에 담은 만큼, 좁고 복잡한 공간에서 여러 장비를 따로 투입하지 않고도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딱정벌레 한 마리의 몸 구조가, 사람이 손가락 하나로 조종하는 산업용 로봇의 설계도가 됐다. 속도와 내구성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지만, 여러 기능을 한 몸에 담으려는 시도 자체가 소프트로봇 연구의 다음 방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