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먼 우주망원경, 마침내 우주로
— 시작은 버려진 첩보위성 거울이었다
허블 시야의 100배, 암흑우주를 향한 나사의 새로운 눈
지난 8월 30일 오전(미국 동부시간), 미 케네디우주센터 39A 발사대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 헤비 로켓이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을 싣고 솟아올랐다. 나사(NASA)가 “허블과 제임스웹의 뒤를 잇는 차세대 대형 관측선”이라 부르는 이 망원경의 주경은, 사실 10여 년 전 미 정찰국이 창고에 처박아 둔 첩보위성용 거울이었다.
발사, 그리고 3개월의 항해
로먼 우주망원경은 8월 30일 오전 7시 26분(미 동부시간·세계시 11시 26분) 팰컨 헤비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목적지는 지구에서 약 160만 km 떨어진 태양-지구 라그랑주 2점(L2)으로, 도착까지는 약 3개월이 걸린다. 이후 수 주간의 장비 점검과 보정을 거쳐 2027년 초 첫 관측 이미지를 공개할 예정이다. 제이러드 아이잭먼 나사 국장은 발사 직후 “이 임무는 일정보다 앞서, 예산 안에서 완성됐다”고 밝혔고, 니키 폭스 나사 과학임무국 부국장은 로먼을 “발견을 만들어내는 기계(discovery machine)”라 표현했다.
망원경 본체 무게는 약 8,150kg(1만 8,000파운드). 핵심 장비인 광시야 기기(Wide Field Instrument)는 18개의 H4RG-10 적외선 검출기로 구성된 3억 화소급 카메라로, 나사의 천체물리학 임무 가운데 가장 많은 하루 1.4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하게 된다. 나사에 따르면 동일한 하늘 면적을 촬영하는 속도는 허블보다 약 1,000배 빠르다.
왜 하필 라그랑주 2점인가
L2는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으로, 태양·지구·달의 빛과 열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인 관측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도 같은 지점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며, 로먼 역시 이곳에서 지구 궤도를 도는 다른 위성들의 방해 없이 넓은 하늘을 오래 지켜볼 수 있다.
첩보위성 거울에서 우주의 눈으로
로먼 우주망원경의 출발점은 뜻밖의 곳에 있다. 2012년, 미국 국가정찰국(NRO)은 더 이상 쓰지 않는 정찰위성용 광학계 두 대를 나사에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허블과 동일한 2.4m 지름이지만 초점거리가 짧아 시야각은 훨씬 넓은 거울이었다. 당시 나사가 예산 문제로 검토하던 로먼 망원경(당시 명칭 WFIRST)의 설계는 지름 1.1~1.3m급 소형 거울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기증으로 계획 전체가 지금의 대형 사양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로먼은 허블급 해상도(0.11각초)를 유지하면서도 시야각은 허블의 100배, 관측 면적당 속도는 최대 1,000배에 달하는 망원경으로 완성됐다. 파장 범위는 가시광선 끝단에서 근적외선(0.48~2.30마이크로미터)까지 포괄한다.
허블 우주망원경
주경 2.4m · 1990년 발사 · 좁은 시야각으로 한 번에 작은 하늘 영역만 정밀 관측
로먼 우주망원경
주경 2.4m(동일) · 2026년 발사 · 허블 대비 100배 넓은 시야로 은하 수억 개를 한 번에 스캔
무엇을 찾으러 가는가
로먼의 첫 번째 임무는 암흑에너지 추적이다. 중입자 음향 진동(BAO), 초신성 관측, 약한 중력렌즈 효과라는 세 가지 독립적인 방법을 동시에 활용해 우주 팽창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두 번째는 외계행성 census(전수조사)다. 중력미시렌즈 기법으로 최대 10만 개에 이르는 외계행성을 찾아낼 계획이며, 이론적으로는 달 질량의 몇 배 수준으로 작은 행성, 심지어 별에 속박되지 않은 ‘떠돌이 행성(free-floating planet)’까지 화성 질량급으로 잡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그래프 장비를 통해 태양계 인근 항성 주변의 거대 행성을 직접 촬영·분광 관측하는 기술도 시험한다. 초기 우주의 원시 블랙홀 탐색, 그 밖의 다양한 천체물리 연구를 위한 게스트 관측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된다.
“1년 후 지금, 우리가 무엇을 더 알게 되고 무엇을 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줄리 매커너리, 나사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로먼 수석 프로젝트 과학자
허블이 30여 년간 인류에게 정밀한 우주의 스냅샷을 건넸다면, 로먼은 그 스냅샷들을 훨씬 넓은 화각으로 이어 붙여 우주의 ‘지도’를 그리는 역할을 맡는다. 2027년 초 공개될 첫 이미지가, 그 지도의 첫 페이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