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세수 56조 더 걷혀 기금 218조로
— 국민의힘 “이재명 저수지” 철회 요구
국회 재정위 “세수 들쭉날쭉한데 지출은 그대로”… 162조 미래대응기금 지속가능성 논란 가열
지난 9월 1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2027년 예산안에는 전례 없는 숫자 하나가 포함돼 있다.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이다. 10년 치 내국세 추세선을 웃도는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삼아 신설되는 이 기금을 두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저수지”라 부르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재정 안정화 장치”라고 맞선다. 두 달째 국회 심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엔 올해 세수마저 예상보다 56조2000억원 더 걷힌 것으로 나타나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기금은 어떻게 설계됐나
정부가 제출한 2027년 예산안은 총지출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12.8%) 늘었다. 2009년 금융위기 때의 10.6%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 증가율이다. 이 예산안과 함께 제출된 ‘미래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바로 162조3000억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근거다.
기금은 두 계정으로 나뉜다.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4대 중점 분야에 쓰일 사업계정 45조4000억원과, 나머지를 담는 총괄계정이다. 총괄계정 중 12조5000억원은 신규 국채 발행을 줄이는 데 쓰이고, 나머지는 예비 재원으로 남는다. 정부는 이 구조를 “재정 댐”이라 부른다. 세수가 많이 걷히는 해에 모아뒀다가 경기가 나쁜 해에 풀어 쓴다는 설명이다.
“이재명 저수지”냐 “재정 댐”이냐
국민의힘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 9월 3일 공동성명을 내고 기금 법안과 함께 제출된 세법 개정안까지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104조원짜리 백지수표에 국회가 먼저 서명하라는 것이냐”며 “돈을 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심의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정부 시행령으로 기금 주요 사업 항목의 최대 30%까지 국회 사전 심의 없이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이 논란의 핵심이다.
지방 재정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지적도 있다. 국민의힘은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을 인용해, 내국세 연동제 폐지로 보통교부세가 98조1000억원에서 68조5000억원으로 29조6000억원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29일 “미래대응기금으로 해도 되죠”라며 명절 농산물 할인 지원(약 1조원 규모)에 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기금을 “재정 안정화 장치”로 규정하며, 국회 심의와 결산 통제를 받는 만큼 “정부의 쌈짓돈”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아일랜드 사례가 던지는 질문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는 지난 10월 4일 검토보고서에서, 기금 재원이 실제 세수가 아닌 ‘예산상’ 세수 전망치를 기준으로 설정돼 법인세 등 경기 변동에 따라 들쭉날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수가 모자라면 지출 부담이 다른 예산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장기기금과 안정화기금을 따로 운용하는 아일랜드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숫자로는 ‘재정 안정화 장치’지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쌈짓돈 논쟁’으로 읽힌다 — 162조원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가 남은 심사의 쟁점이다.
남은 절차와 쟁점
예산안 심사는 상임위 예비심사를 지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단계로 넘어간다. 법정 처리 시한은 새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10월 들어 올해 국세 수입 전망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호실적에 힘입어 3월 전망보다 63조2000억원 늘어난 478조6000억원으로 상향되면서, 초과세수 56조2000억원이 추가로 기금에 더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 경우 기금 규모는 산술적으로 218조원에 이른다는 계산도 나온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는 정부안에 세수에서 기금으로 넘어가는 금액의 상한 규정이 없다는 점도 심사 대상으로 짚었다. 법인세처럼 경기에 민감한 세목이 전망을 밑돌면 기금으로 들어갈 재원부터 줄어, 결국 다른 예산을 끌어다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다.
162조원을 ‘안전판’으로 볼지 ‘백지수표’로 볼지, 그 답은 아직 국회 심사 안에 있다.